언론보도
언론에 보도된 한국해비타트의 소식을 소개합니다.[국민일보]한국해비타트 파키스탄 지진 구호, 폐허 텐
- 작성일2007/01/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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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지진 피해 지역인 발라코트를 한국 젊은이들이 찾아갔다.
한국 청년 16명이 해비타트의 파키스탄 지진 피해 복구 프로젝트에 참가,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현지에서 구슬땀을 흘린 것이다. 한국해비타트는 1년5개월 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발라코트에서 주민들을 위해 임시 주거처를 짓고 있다(본보 17일자 29면 참조).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자락인 이곳은 지금 겨울. 하루하루 산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얇은 텐트 한 장으로 만들어진 임시 거처에서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겨우 연명해가고 있다.
지진 피해 주민단체의 대표인 모하메드 자히르(30)씨는 “정부에선 도시로 이주하라고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도시에 가면 아무런 생계수단이 없는 농민들이라서 집을 재건축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어 1년이 넘도록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해비타트에서도 영구 주택을 건축하지 못하고 철판과 파이프,목재로 임시 주거처를 지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파키스탄 해비타트의 파르한 몰 대표는 “전 세계 해비타트 중에서 이런 구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발라코트로 가는 길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군데군데 바위가 막고 있는 임시 도로. 산사태가 난 곳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험한 길을 덜컹거리는 지프의 짐칸에 올라타 먼지에 시달리면서 1시간 동안 올라가야 한다. 파키스탄 해비타트의 현지 스태프인 말린 슈헵 칸(34)씨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엔 20분이면 가던 길이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2005년 10월 진도 7.6의 강진으로 순식간에 10만여명의 인명 피해가 난 곳이다. 1년하고도 5개월이 흘렀지만 산비탈을 돌 때마다 무너진 집의 잔해와 흙이 벌겋게 흘러내린 흔적이 그때의 참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산비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목격한 자원봉사자들은 “할 말이 없다”며 탄식했다. 한 평 남짓한 텐트 속에 7명이 살고 있었으며 그나마 무너지지 않은 집에선 5,6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게 보통이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장애가 있는 어린 손녀와 함께 염소 우리에 살고 있는 모습을 본 이동훈(25·명지대 경영학과)씨는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도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어 해비타트 텐트에서 생활해야 했다. 열악한 상황 때문에 한국해비타트에서 파키스탄 자원봉사자들은 특별히 ‘군에 다녀온 20대 남자’로 자격을 제한했을 정도다.
한국 청년들은 건강하고 강했다. 텐트에서 떨며 밤을 지샌 청년들이 이른 아침 일어나 텐트 앞에 둘러서서 체조로 몸을 풀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파키스탄 군인들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 청년들은 일하는 틈틈이 준비해간 한국 홍보 물품들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한국을 알리는 데도 힘썼다. 언어와 문화는 달랐지만 어설픈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며 주민들과 정을 나누었다.
지진으로 집을 잃고 형의 가족과 살고 있던 압둘 라잡(32)씨는 “올 겨울은 지난해보다 더 춥다고 하는데 한국 청년들이 우리 가족이 거주할 곳을 만들어줘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며 자원봉사자들을 끌어안았다. 파키스탄 해비타트의 일리어스 마시 사디크(33)씨는 “한국 젊은이들이 무척 예의 바르고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게 보기 좋았다”면서 “특히 조국을 무척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해비타트는 이곳에 모두 115채의 임시 거주처를 건설하고 있다. 임시 거주처에 쓰인 건축자재들은 정식 거주지를 건설할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파키스탄 해비타트는 “아직도 수천 채의 임시 거주처가 필요하다”며 “거주처를 마련한 뒤에는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소규모 소액대출(마이크로 파이낸싱) 사업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라코트=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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