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에 보도된 한국해비타트의 소식을 소개합니다.[더나은미래] 송영태 상임대표 단독 인터뷰
- 작성일2016/04/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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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2.
[더 나은 미래] "기업 경영 40년 노하우로 주거 복지 혁신 이룰 것"
송영태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 인터뷰
"美는 예산의 30% 운영비로
우리나라는 10% 내외… 정부와 NGO 손잡으면
사각지대 최소화 현장중심 복지문제 해결"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이 망치를 들고 집 짓는 풍경. 올해 40년을 맞은 글로벌NGO '해비타트'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해비타트는 오로지 '주거 빈곤 퇴치'라는 목적 사업에 올인하는 단체다. 1994년 경기도 양주에 3가구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에 지부가 생겨난 지 어언 22년. '해비타트'라는 NGO를 알고 봉사하는 사람은 많지만, 의외로 이곳에 기부하는 개미 후원자는 적다. 그런데 최근 한국해비타트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리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인이 그 주인공이라고 했다. 취임 1년을 맞은 송영태(68·사진)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를 찾아, 변화의 목소리를 들었다.
송영태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
―한국해비타트 대표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됐나.
"특별한 인연은 없다. 물론 이전에 두란노출판사 대표를 5년 하면서 비영리조직을 접하기는 했다. 당시 '기독교 출판사는 왜 꼭 적자를 봐야 하나' 의문을 가졌었다. 질 낮은 종이에 자간을 최대한 좁혀 만든 책, 산더미처럼 쌓인 재고를 보며 답답했다. 일반 메이저 출판사들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종이 질을 높이고, 양장본으로 고급스럽게 만드는 대신 책값을 1만2000원으로 올렸다. 교재로 쓰이는 책은 복사본으로 주문 제작, 재고를 최소화했다. 교회마다 간이서점을 만들어 책을 홍보했다. 당시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 100만부를 훌쩍 넘기는 등 베스트셀러가 여럿 나왔다. 매출이 160억원 규모에서 400억원대로 커졌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지인(知人)이 '한국해비타트 대표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해줘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선뜻 나섰다. '지명'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지원자 10명 중 최종 2명을 뽑아놓고 마지막 면접까지 보더라. 떨어졌으면 좀 이상할 뻔했다(웃음)."
―한 글로벌NGO 대표가 인터뷰하면서 "밖에서 보는 NGO와 안에서 경험한 NGO가 정말 다르다. NGO 대표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 지난 1년을 겪은 소감이 궁금하다.
춘천 현장에서 봉사하고 있는 이화여대 해비타트 동아리(위)와 ‘글로벌 빌리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해외 봉사단원의 모습.
그동안 한국해비타트와 함께한 자원봉사자는 40만명에 달한다. / 한국해비타트 제공“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NGO 리더는 체력이 없으면 안 되겠더라. 우선 사업을 보면, 한계가 없다. 하드웨어만 보면 집을 지어주는 건축업과 비슷하지만, 빈곤 가정을 회복시켜주는 소프트웨어 기능도 해야 한다. 사회 이슈에 발 맞추는 것도 과제다. 20년 전에는 소득으로 분류해 차상위 계층의 주거 빈곤 이슈를 다뤘지만, 지금은 소득뿐 아니라 다문화, 독거노인, 청소년 등 복잡 다양해졌다. NGO도 변화와 성장을 못 하면 경쟁에서 죽는 곳이다. 후원자들의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려운 사람 도와주겠지' 하고 봤다면, 이제는 투명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NGO에 후원한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서 타 NGO와 비교해 우리만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후, 향후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주거 복지 전문 NGO로서 전문성을 강화, 정부 및 기업, 개인과의 파트너십을 늘리는 게 과제다."
―미국, 영국의 NGO를 취재하면서 우리의 대(對)정부 파트너십이 해외에 비해 약하다는 것을 여러번 확인했다. NGO에 대한 신뢰와 역량 문제도 있고, 정부가 복지 사업을 주도해온 역사적 맥락도 있다. 정부 파트너십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문제부터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서민 주택을 대부분 LH가 짓고 있지만, 미국은 주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해비타트에 제공해 주거 복지를 실현한다. 정부가 직접 하는 것보다 전문성 있는 NGO가 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한국해비타트 역시 최근 정부와 손잡고 새뜰마을 사업을 하고 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매년 80여 곳 정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NGO가 난립해서 정부나 기업이 파트너십을 선정할 때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민관 협력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최근 비영리단체들이 투명성 관련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직접 단체를 운영해보니 어떤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나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을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비영리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만큼 비영리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NGO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부심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직원은 낮은 연봉 때문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회사를 옮겨야 한다. 신입 직원은 일에 익숙해지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서 영리기업으로 많이 떠난다. 사회적으로 아직 운영비에 대한 개념이 바로잡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NGO가 운영비를 많이 쓴다고 하면 불투명하고 방만한 조직이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NGO에 프로젝트 맡길 때 예산의 30%를 운영비로 배정한다. 10% 내외에 그치는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NGO의 가치와 역할을 제대로 평가할 눈이 좀 있어야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사회공헌 예산을 감축하면서 NGO에 비상이 걸렸다. 해비타트는 기업 파트너를 중심으로 모금을 전개해온 만큼 생존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나.
"기존에는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을 중심으로 연계해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시장, 그중에서도 동남아권 진출이 활발하고 사회공헌 의지가 높은 300대 기업으로까지 파트너십을 확대할 전망이다. 해비타트는 주택 공급을 중점 사업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 측정이 명확하다. 또 세계 70개국에 퍼져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을 살리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안정적인 기부금 운용을 위해 개인 후원자를 확대하는 일도 중요하다. 문제는 해비타트 사업의 특성상 개인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180만 채의 주택을 짓는 데 돈을 보태는 것보다, 어린이의 한 끼를 내가 직접 살 수 있다는 것이 더 강렬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지난 21년간 해비타트와 함께 해온 봉사자 40만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콘텐츠인데, 그동안 숫자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놓쳤다. 이제라도 꾸준히 콘텐츠를 발굴해 후원자와 소통할 예정이다. 지난 3월 28일 한국해비타트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한 '감사의 밤' 역시 후원자 스킨십을 확대하는 맥락에서 개최했다. 오는 9월에는 고액 기부자 200~300명을 초청해 후원의 밤을 열려고 한다."
―1년 만에 놀라울 정도로 과제를 명확하게 파악한 것 같다. 영리기업의 경영 방식이 비영리 NGO에 도움이 되는가.
"NGO의 경쟁력은 자발성이라고 생각한다. 성과 중심의 영리기업에는 없는 동력이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 교수도 '미래사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조직은 NGO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임금 문제로 고연봉 전문가를 직접 고용할 수는 없지만, 미션을 가진 은퇴 건설전문인력과 손을 잡으면 조직도 활성화되고 내부 역량도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영리와 비영리 사이의 융합이다. 이끌어갈 자신은 있는데, 고민은 내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웃음)."
송영태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는?
1976년 서울대 경영대 졸업 후 25년간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며, LA해외무역 현지법인장, 대우자동차공업 서부법인 및 오세아니아 법인 대표를 역임했다. 2001년 도서출판 두란노의 대표이사직을 맡았으며 2006년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대표이사와 2012년 SK브로드밴드 사외이사를 거쳤다. 2015년 공개채용을 통해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