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에 보도된 한국해비타트의 소식을 소개합니다.[세정신문] [연재]각계각층 마음모아 세워진 ‘사랑의 쉼터’
- 작성일2015/10/29 17:45
- 조회 4,390
[연재]중증장애인을 위한 1만 사랑이 모이다
-'나는 평생 세금쟁이'- (78)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前 대전지방국세청장/前 한국세무사회장)
‘석성 사랑의 쉼터 1호점’이 논산에 세워진 사연
2013년12월12일, 내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석성1만사랑회에서 처음으로 충남 논산에 ‘사랑의 쉼터 1호점’을 오픈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쉼터는 200평 대지 위에 30평 단층 목조주택으로, 20여명의 장애인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지어졌다.
무엇보다 이 쉼터가 값진 것은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들을 모아 주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석성1만사랑회에서 1억2천만원의 건축비를 지원했고, 사랑의 집짓기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국해비타트(당시 유태환 대표)에 소속된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몇개월동안 구슬땀을 흘려가며 정성껏 지어 주었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LED 조명과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했으며, 특히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도 장애인들 눈높이에 맞게 설치해 주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의 조망권을 확보해 주기 위해 방바닥에서 창문턱까지의 높이를 50cm가 안되게 낮추었으며 현관이 아닌 거실 창문을 통해서도 언제든지 휠체어 출입이 가능하도록 배려해 준 것도 아주 돋보였다.
나는 그날 입주식에서 눈물겨운 인사말을 했다.
“석성 사랑의 쉼터 1호점이 유서 깊은 땅 이곳 논산에 세워져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석성1만사랑회가 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너 나 할 것 없이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장애인들이 아닙니까? 불시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언제든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우리 석성가족들은 장애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 주는 것을 하늘의 명령으로 여기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그 첫번째 결실을 맛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사랑의 쉼터 건립이 매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끊임없는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또 완공된 쉼터 1호점을 책임지고 운영해 나갈 김성자 원장도 “내 가족들도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 주어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2008년5월26일 아름다운밥퍼1호점 개원식에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계안 의원, 이혜훈 의원 등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이 참에 필자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곳 논산에다 장애인 쉼터를 지어주게 되었는가를 밝힐까 한다. 그 중심에는 참으로 가련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김성자 원장이다.
이 분이 우리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년 전인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자가 국세청 사무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즈음에 한국밀알재단 주관으로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의 서울 나들이 행사가 있었다. 그 때 필자 부부는 단순히 이들 장애인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필자의 집에서 3일 동안 함께 숙식할 수 있도록 장애인 홈스테이(Home stay) 신청을 했었는데 우리 집에 연결된 장애인이 바로 그녀였다.
1952년생인 그녀는 한때 아주 잘나가던 패션모델이었다. 그야말로 뭇 남성들을 울릴 정도로 늘씬한 모델이었는데 지난 1980년 친구들과의 강원도지방 여행에서 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하루 아침에 모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중도(中途) 장애인’이 된 것이다. 척추뼈가 망가져 목 아래 모든 신경이 손상됐고 심지어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지체장애 1급 중증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당시 그녀의 고백에 의하면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을 절망하며 몇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단다.
그러던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극동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 방송에서 들려 나온 생명의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쳤단다.
그 후 그녀는 재활 의지를 불태웠고 드디어 대전에 있는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전도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 때 우리 가족과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도 비록 휠체어를 타고 다녔으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 보였다. 여기에다 필자의 집에서 3일 동안 숙식을 함께 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어 한 가족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다.
또 필자와 현직 후배 세금쟁이들로 구성된 마태 봉사모임에도 가끔 참석해서 함께 즐기기도 했으며, 심지어 동해안으로 가는 여름 휴가도 함께 갈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
그 후 그녀는 대전시내에서 10여평 되는 철거민 아파트에서 자기보다 환경이 더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을 보살피며 어렵게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아름다운 꿈이 하나가 있었다. 예전에 그녀의 아버지께서 논산 인접지역인 광성면에서 면장으로 몇년간 지내시다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실 때 그녀가 중증장애인이 된 것을 너무 안타까워 하시면서 특별히 그녀에게 살던 집을 물려주셨다고 한다. 그녀는 그곳에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쉼터를 짓는 게 평생 소원이라고 했다.
20여년 가까운 긴 세월에 그녀가 올려드린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 석성1만사랑회를 그녀에게 붙여주신 것 같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근에 있는 논산세무서 현직 후배들로 하여금 지원하고 관리토록 하게 했으니…,
“그래서 말인데, 이것 역시 우리 세금쟁이들을 통해 만들어진 하늘의 걸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