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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해비타트가 전하는 희망의 이야기

    언론보도

    언론에 보도된 한국해비타트의 소식을 소개합니다.
    [한국경제매거진]-Healthy & Wealthy 2nd Life-금융회사 CEO에서 비영리 단체 CEO로 변신
    • 작성일2011/06/14 09:16
    • 조회 1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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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ccess Story 1 _이창식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장

     

    인생 100세 시대에는 현역시절보다 퇴직 후의 후반 인생이 더 중요하다. 인생 후반에서 중요한 것은 돈과 친구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 사회를 경험한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재취업이 아니더라도 정년 후에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한다. 현역시절 하지 못한 뒤늦은 공부를 하거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거나, 봉사를 목적으로 해외에 장기체류를 하는 이들도 있다.

     

    푸르덴셜투자증권 부회장을 끝으로 은퇴

    그중에는 민간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NPO)를 만들거나 그 단체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벌이는 이들도 많다.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해서 100% 무료 봉사는 아니다. 단체에 따라 교통비 등 약간의 수당을 지불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NPO에서 일하는 사람도 취업인구에 포함시키는데, 현재 NPO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체 취업인구의 10%를 넘는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고베(神戶) 대지진을 계기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확산됐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새 적잖은 NPO 단체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동한 전문가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회장이자 한국해비타트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창식 회장이다.

    2004년 한국해비타트 상근이사로 본격적으로 NPO 활동을 시작한 이 회장은 올 초 해외원조단체 77개의 협의체인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 NPO를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인 그는 7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였다. 현대투신증권 출범 이후 6년 10개월을 CEO로 일했고, 이후 푸르덴셜투자증권에서 부회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은퇴할 즈음에는 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37년 8개월간 금융업에 몸담으면서 일은 여한 없이 했거든요. 부도난 한국자동차보험 살리느라 숱한 밤을 지샜고, 현대투자증권을 인수해서 키우느라 일은 정말 실컷 했습니다. 그래서 2004년 푸르덴셜투자증권에서 나온 후에는 한동안 여행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쉬는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NPO에서도 할 일이 많더군요. 재미도 있고요.”

    40대 봉사 모임이 인연이 돼 시작한 해비타트 운동

    이 회장과 NPO와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1980년대 초반부터 봉사모임에 참여했는데, 거기서 함께 활동하던 이가 해비타트 한국운동본부의 설립을 주도했던 것. 그런 인연으로 이 회장은 1990년대 초반 자원봉사자 겸 후원자로 참여했다. 1997년부터는 이사로 활동했고, 은퇴 후인 2005년부터는 상임이사 겸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현역시절부터 틈나는 대로 봉사에 참여하고 후원금을 지원한 것이 한국해비타트 회장이 될 수 있었던 토대였다고 말한다. 그는 오랫동안 금융회사 CEO를 맡았던 경험이 한국해비타트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사실 그가 회장을 맡던 2005년만 해도 한국해비타트는 상근직원 10명 안팎의 작은 NPO였다. 더구나 경영자의 오랜 부재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NPO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설립 이념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그것이다. 해비타트는, 이데올로기 혹은 미션이라고 불러도 될 설립 이념은 이미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구조가 문제였다.

    대부분의 NPO는 종교적 신앙심이나 동일한 이상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상과 정신만으로는 NPO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2005년 한국해비타트도 그 갈림길에 서 있었다.

    조직이 성장하려면 투명성과 효율성, 전문성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많은 NPO 직원들은 이런 것들을 강조하면 설립 이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상충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특히 투명성을 높이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투명하려면 회계가 정확해야 하는데, 사실 회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수준이 그래요. 미국인들의 회계 수준이 고3 수준이라면 한국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이나 될까요. 아무튼 그런 노력 덕분에 지금은 많은 부분이 개선됐습니다.”

    전문성과 책임감 강한 은퇴자들 대거 영입

     

    은퇴자들은 전문성과 책임감을 겸비한 우리 사회의 귀중한 인적 자원이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은퇴자들이기에 적극적인 자세만 가지면 인생 이모작을 그리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한국해비타트를 맡으며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은퇴한 시니어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이다. 2005년 회장을 맡고 보니 대부분의 직원이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들이었다. 선배가 없다 보니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급여 등의 문제를 감내하고 해비타트로 올 과·차장급 직원이 없었다.

    그때 생각한 게 전문성을 갖춘 은퇴자들이었다. 은퇴자들 중에는 한 분야에서 수십 년씩 전문성을 쌓은 이들이 적지 않다. 특별한 대안이 없는 이들을 봉사활동에 참여시키자고 마음먹었다. 몇몇 주변 은퇴자들에게 그의 생각을 전하자 모두들 흔쾌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부분이 며칠 뒤 “엄두가 안 난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며칠 후 서너 명의 은퇴자들이 사무실로 나왔다. 정부 고위관료 출신도 있고, 기업체 간부를 지낸 이도 있었다. 그런데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했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NPO에서는 실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비서를 두고 일을 한 탓에 그들 대부분이 간단한 컴퓨터 작업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온 이들 중에서도 지레 포기하는 이들이 생겼다.

    “어쨌든 새로운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자면 기술보다는 파이팅이 중요한데 그게 부족했어요. 이래 거르고 저래 거르고 나니까 딱 한 분이 남았어요. 일주일에 이틀을 나오기로 했는데, 직원이 다 젊으니까 잘 어울리지를 못 해요. 그래서 제 사무실에 책상을 두고 1년 가까이 같이 지냈습니다. 지금은 활동을 안 하시는데, 그분 이후로 몇 분이 해비타트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현재 직원 중에는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해비타트 활동을 시작한 이도 있다. 은행에서의 경력을 살려 준법감시인으로 활동하는 이도 있고, 다른 사람은 법률, 회계, 총무, 인사 등 경영지원을 총괄하고 있다.

    건축학과를 나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다 은퇴한 이는 설계를 담당하고 있고, 건설시행사 임원을 지낸 이는 해비타트의 전문성 확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이는 국제사업과 자원봉사를 담당한다.

    현재 한국해비타트 상근직 50명 중 10여 명이 은퇴자들이다. 이 회장은 이들 모두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한국해비타트에 큰 힘을 보태는 보배들이라고 했다.
     

    NPO 확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기회 증가

    이 회장은 은퇴자들을 고용하면 좋은 점이 많다고 했다. 일에 있어 우선 전문적이다. 또한 젊은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이다. 30, 40대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와도 금방 떠난다. 은퇴자들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은퇴자들은 주니어들과 달리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다.

    무엇보다 이들이 NPO 활동을 생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NPO로선 적은 비용으로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해비타트는 일주일에 3일 일하는 봉사자들에게는 교통비로 월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풀타임 직원들의 연봉은 3000만 원 수준이다. 이것도 사정이 좋아진 지난해부터 지급됐다.

    이 회장은 은퇴 후 NPO 활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초기에는 취미생활로 여기라고 조언했다. 해비타트 운동이 겉으로 보기에는 집짓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그외에도 할 일이 많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봉사를 하면 된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제가 한국자동차보험에 있을 때부터 알던 분인데, 은퇴하고 해비타트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2~3일 나오다 너무 열심히 하셔서 상근직이 되셨고, 나중에는 수원지회 살림을 맡게 되셨어요. 지역에 나가서도 열심히 활동을 하셨어요. 그러다 주변 추천으로 경기도 도의원이 되신 분이 계십니다. NPO는 열심히 한 사람의 발언권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열심히만 하면 자기 자리가 생깁니다.”

    이 회장은 앞으로 한국에서 NPO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력이 커지고 사회가 성숙하면 NPO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은퇴자들이 보람된 삶을 시작할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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