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해비타트와의 만남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 작성일2021/01/1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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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마이멘싱 주 라그람푸 마이히파라 마을에 사는 아시시는 방글라데시 해비타트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비바람이 불 때마다 불안에 밤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아시시의 아들 또한 아시시가 어린 시절 그랬듯이 책상이 아닌 침상 위에서 숙제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해비타트와 함께 찾아온 안전하고 안정적인 새 보금자리는 아시시 가족에 더 나은 삶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가정의 무직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제 가족과 저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 아시시-
아시시는 2000년 방글라데시 해비타트 직원들이 마을에 답사를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대나무로 만든 창 없는 집은 태풍으로 망가졌지만 수리할 여력이 없었던 아시시의 부모님은 방글라데시 해비타트에 집수리를 위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웃의 도움으로 USD 35의 선납금을 마련했고 그렇게 내 집 마련을 향한 5년간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가족과 함께 아시시 가족은 마이멘싱 첫 번째 해비타트 입주가정이 되었습니다.
(왼쪽부터) 아시시와 부인 오초나, 아버지 희망수 찬드라, 어머니 모모타 그리고 아들 아디타가 방글라데시 마이멘싱에 위치한 집 마당에 서 있다.
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Ritwik Sawant.
독립된 생활 공간이 필요했던 22살의 아시시. 해비타트가 제공한 건축 자재와 은행 대출을 받아 추가로 마련한 건축 자재를 가지고 27제곱미터의 땅 위에 해비타트 표준주택보다 큰 집을 지었습니다.
아시시는 방글라데시 해비타트가 마이멘싱에 더 많은 보금자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해비타트에서 입주가정의 상환금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일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건축 관리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한국에서 온 건축 봉사자들과 함께 있는 아시시(우측 사진 뒷줄 우측 세 번째)와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아시시 (사진/Ashish)
“해비타트와의 만남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 아시시 –
더 안정적인 직업으로 아시시는 집을 증축하기 위해 받았던 대출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실직한 후, 그는 가족의 당당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아시시가 30살이 되는 해에는 집을 다시 한번 증축하고 관정 우물을 설치하기 위해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증축이 마무리된 2010년 아내 오초나와 결혼하였고, 지금은 슬하에 두 아이(아디타(7), 락키(2))를 둔 부모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위해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고 16살에 학교를 중퇴했던 아시시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면서도 식지 않았습니다. 1998년 기술전문학교에서 엔지니어링 디플로마를 취득한 아시시는 10년 후 사회과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2018년 공립대학에서 개발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해비타트와 함께한 20년 동안 아시시는 안전하고 저렴한 보금자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아시시는 해비타트가 짓는 안락한 보금자리가 단순히 안전한 집이 아닌 삶의 터전이자 한 가정이 성장하고 또 발전하는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더 많은 아시시가 생길 수 있도록, 한국해비타트와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