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마을을)고치니까 청춘이다
- 작성일2017/05/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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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홍보팀 김은총
매년 12월부터 4월까지 해비타트에서는 영리더스빌드(Habitat Young Leaders Build)가 진행된다. 약 5개월간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의 청년들이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번 2017 영리더스빌드는 ‘PLAY LEAD SHARE’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총 16개 국가가 참여하게 됐다.
한국해비타트의 공모전 ‘쓰리고’ 역시 이 영리더스빌드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찾고, 고치고, 나누고’라는 뜻을 가진 ‘쓰리고’는 15~29세 청년들이 팀을 만들어 마을의 열악한 시설이나 위험한 장소, 오래되거나 지저분한 환경을 찾아 개선하는 내용의 공모전이었다.
(사진='Urtivist' 제공)
공모전 마감을 불과 5시간 앞두고 한 통의 지원서를 받았다. 다른 지원서에 비해 유독 용량이 컸다. 첨부파일에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 인터뷰, 예상 조감도 등이 포함된 16장의 기획서와 관련 지자체들과의 협약서, 직접 찍은 3분 남짓의 답사 영상까지. 이 정도 준비성이면 정말이지 지구를 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서가 날아온 곳은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대학교 도시공학과의 설계동아리 'Urtivist'였다. ‘Urtivist’는 ‘Urban Activist’의 줄임말로 ‘도시 활동가’라는 뜻이 있었다. 며칠 뒤 약 1달간의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들의 일정표를 받았다. 젊은 활동주의자들의 작업을 직접 취재해보고 싶은 마음에 진주로 달려갔다.
활짝 핀 겹벚꽃나무 밑에 손을 흔들고 있는 가무잡잡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광활한 캠퍼스에서 길을 잃은 어린양을 찾아 나선 민병훈 군이었다. “예가 좀 넓지예.”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병훈 군이 작업실로 이끌었다.
“도시설계는 재생과 계발로 분야가 나뉘어요. 우리 동아리는 재생 쪽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병훈 군의 설명을 들으며 작업실에 발을 들였다. 작업실은 공학관 지하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은 공간이었다. 이미 대여섯 명의 동아리원들이 모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밝아 보여 이유를 물으니 오늘 중간고사가 끝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히 쓰레기 분리수거함이나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하는 게 주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아무래도 마을 입장에서 우리는 외부인이니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작업을 진행하던 병훈 군이 말을 꺼냈다. 일단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마을 주민들은 물론 이장님과 협동조합 등을 직접 찾아다녔다는 것이 병훈 군의 설명이었다.
이들이 개선하려는 곳은 몇 년째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지고 있는 진주시 옥봉동의 한 골목길 입구였다. 이들은 이곳에 깨끗한 쓰레기 분리수거함과 헌 옷 수거함, 그리고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를 막아줄 자그마한 화단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처음 현장을 봤을 때는 지저분하게 널려진 쓰레기와 악취 때문에 좀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상황이 불편하다고 느낀 주민들이 10명 중 고작 4명 정도였다는 사실이었어요. 주민들은 이미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 버린 거죠.” 병훈 군이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장님과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도로점용허가 신청부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어요.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와준 곳이 바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였어요.”
“저 사실 복지센터와 협약을 공모전 당선자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해버렸었어요.” 병훈 군이 다른 친구들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혹시 탈락했으면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는 물음에 병훈 군은 “사비를 내서라도 꼭 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셈”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병훈 군이 복지센터와 체결한 협약은 진주시가 대학 동아리와 체결한 최초의 협약이었다. 당시 협약식에 참석했던 정상섭 중앙동장은 “경상대학교 설계동아리와 환경 관리 협약 체결에 감사한다. 보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중앙동 만들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면서 지자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제안해준 동아리 측에 고마움을 전했다.
(사진='Urtivist' 제공)
돌아오는 기차 안, 문득 한 동아리 학생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쓰레기 분리수거함과 헌 옷 수거함을 만드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에요. 우리가 좀 더 능력이 뛰어났다면,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준비했다면 이것보다 나은 아이템이 나왔을 텐데 아쉬운 점이 많아요.”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마음에 꽃이 피고 별이 반짝이는 것을. 마을을 위해 고칠 것을 찾아 나선 이들이야말로 진정 찬란한 청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