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욕실이 주방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 작성일2016/12/01 13:43
- 조회 3,947
글 홍보팀 김은총
사진 해비타트 기자단 박현수
자, 욕실이 주방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출근을 앞둔 아빠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정신없이 세수를 하고 있고, 덜 깬 동생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엄마 앞치마 자락만 부여잡고 양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는 머리를 감았다가 말렸다가 몸치장에 여념이 없네요. 샤워를 하고 싶은 저는 다들 빨리 나가달라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낡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시끄러운 주방에서는 제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
이 모든 것이 2평 남짓한 우리 집 주방에서 벌어졌던 일들이었습니다. 저는 요리사가 꿈인 초등학교 5학년 안하은(12·가명)입니다.
“그 작은 주방에서 다섯 식구가 아침마다 북적이면서 음식은 물론 샤워와 빨래도 함께 했어요. 게다가 그때만 해도 방에서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없어서 주방에 가려면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와야 했지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렇게 주방을 들락날락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은이 어머니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가장 불편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겨울에 아이들을 씻길 때”라고 답했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운 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이들을 한 명씩 씻기고 수건으로 돌돌 싸맨 채 현관을 통해 들여보내기를 반복했다는 게 어머니의 설명이었습니다. “주방 문이 밖에 있으니 벌레랑 쥐도 많았어요. 하루는 하은이가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거예요. 달려가 보니 주방에 커다란 쥐가 나와서….” 어머니의 얘기를 듣던 하은이가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는지 몸서리를 칩니다.
지난여름 한국해비타트를 처음 만난 어머니는 집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왔습니다. 당시 해비타트는 삼성물산과 강동면의 도움을 받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지역의 가정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집 고치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은이네 집 실태조사에 나선 해비타트 역시 주방의 위생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 기존 주방이 있던 자리에 깨끗한 욕실과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좋아한 사람은 역시 하은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씻는 게 편해지니까 하은이가 시도 때도 없이 샤워를 한다”면서 슬쩍 눈을 흘겼습니다.
이 밖에도 하은이네 집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우선 지저분했던 건물 외벽에는 열효율이 좋은 예쁜 마감재를 덧댔습니다. 마당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던 보기 싫은 재래식 화장실은 깨끗하게 철거됐습니다. 내부에는 보온과 단열을 위해 새로운 보일러와 에어컨이 설치됐고, 창호와 벽지·장판이 모두 깔끔하게 교체됐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 어머니는 “욕실과 화장실만 만들어주실 줄 알았지, 집 외부와 내부까지 이렇게 예쁘게 바꿔주실 줄은 몰랐다”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요리사가 꿈인 하은이를 위해 새로운 주방도 선물했습니다. 기존에 마당이었던 곳까지 집을 증축시켜 만든 이 넓은 주방은 하은이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주방을 둘러보던 하은이에게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었더니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엄마·아빠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다”는 기특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무슨 요리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는 수줍게 “달걀부침과 김치볶음밥”이라고 말합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하은이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습니다. 하은이는 지체 없이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곳”이라고 답했습니다.
해비타트가 선물한 새집이 이전보다 더욱 따뜻하게 하은이와 가족들을 감싸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