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봉사기업파트너] 기적과 같은 네팔 봉사활동
- 작성일2015/03/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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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 같은 네팔 봉사활동!
프랑스, 두바이, 세이셀, 칸쿤, 하와이… 여행을 좋아하는 저에게 매년 휴가 때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리스트들… 그 중에 최빈민국 중 하나인 네팔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소 봉사활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누굴 돕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그런 여유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빈곤의 결과는 그 개인 혹은 국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기에 단순한 금전적, 물질적 도움으로는 그 빈곤의 근원을 뿌리뽑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기업데이터에서 2년 전부터 해비타트라는 곳과 외국 빈곤층에 희망의 집짓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금년 회사 노조위원장님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권유에 신청,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선발이 되었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고생 좀 하다 오겠군… 그런데 그 집을 짓는다고 근본적으로 뭐가 달라질까?’ 이 생각은 아주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2015년 3월 13일 9시 55분 인천 ->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설레이지 않는 마음으로 휴가 여행이라면 짧은, 하지만 봉사활동이기에 아주 긴 7박 8일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13일 14시 15분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 무거운 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질서, 불결, 악취, 매연, 먼지가 가득한 네팔을 보며 세상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내가 올 곳이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요.
이번 봉사활동의 첫 번째 일정은 네팔 금융노조 방문이었습니다. 최초 해비타트와 함께 나눔의 실천을 회사 노조에서 추진하였고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다음날 포카라에서 시작되기에 첫날 카트만두에서 의미 있는 한국과 네팔의 금융산업노동조합교류가 있었습니다. 예상 밖의 환대와 노동조합 업무뿐만 아니라 사회공헌에 대한 많은 역할에 대해 설명 들으며 공항에서 느낀 네팔에 대한 첫인상이 약간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월 14일 오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포카라로 이동하였습니다. 포카라에서 첫 일정은 현지 고아원 방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아원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인 이 고아원은 우리가 방문하는 날 내린 빗소리를 그대로 흡수하여 대화가 안될 정도로 소음을 내는 양철지붕으로 덮힌 악취투성이인 그런 건물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가 신경 쓴 것은 여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나에게 피부병이나 전염병이 옮으면 어쩌지? 빨리 여기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고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거기 머무르는 동안 한시도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포카라에서 첫날을 마무리하며 저녁에 몇몇 팀원들과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와는 너무 다른 생각을 들으며 약간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지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다 개인과 국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 누구도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3월 15일, 드디어 건축봉사 첫 날이 밝았습니다. 저희는 아침 식사하자마자 우리가 집을 지을 현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도착 후 홈파트너 분과 이웃 분들의 간단한 환영을 받고서, 군대 이후 처음으로 다시 해 보는 삽질, 곡갱이질, 시멘트+모레 배합 등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여기 오는 비용을 돈으로 전달해주면 훨씬 더 좋은 집, 더 많은 집을 건축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의미 없는 삽질을 열심히 했습니다.
건축봉사 첫날이 끝나고 속으로 비웃었지요. 작년 봉사활동에 참가했던 팀원들과 해비타트 직원들이 어제 했던 말들을… ‘실제 건축현장을 경험하면 봉사에 대한 생각이 바뀔 거예요’
3월 16일, 건축봉사 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포크레인 한 번이면 해결될 일을 20명이 달려들어 삽질과 곡갱이질을 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지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 탓에 의미 없이 열심히 삽질을 하였지요. 그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사실 저희가 해비타트에 사전 요청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기초공사를 끝내는 것이었죠. 하지만 현지 사정으로 약속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바람에 둘째 날부터 삽질과 곡갱이질은 현지에서 우리는 벽돌 쌓기를 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어 기초공사가 끝날 때 까지 잠깐 휴식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때 그 분이 나타났습니다. 184cm, 90kg에 육박하는 제 체구의 반 정도 되시는 왜소한 분. 홈파트너 안주인의 친 오빠, 나이는 40대이지만 외모는 50대가 훨씬 넘어 보이시는 분이었습니다. 다들 군대에서 이가 갈리게 했기에 다시는 삽질, 곡갱이질을 못하겠다던 그 일을 그분 혼자 쓰러져 갈듯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팀원들 모두 누가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다들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며 삽을 들고 현장으로 나가게 되더군요.
갑자기 심장이 뜨거워지는 느낌, 마치 군대시절 힘겨운 훈련을 마무리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느끼던 뭔가 뭉클한 기분이랄까… 머리를 누가 망치로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죠. 처음으로 홈파트너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홈파트너는 만 32세의 여성분으로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16세의 딸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네팔에 오기 전, 포카라 첫날 사전 OT때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관심이 없어 기억이 나지 않았지요.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주거환경을 첫 째날 봤지만 관심이 없어 눈으로 흘렸습니다. 다시 휴대폰 카메라에 저장되어 있던 그 환경을 꺼내어 봤죠.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니… 홈파트너분과 그 친 오빠의 몸이 다 부서질 정도로 일하는 모습과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오버랩되며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살 수 없는 분들이라는.... 제가 여태껏 생각한 빈곤은 개인과 국가의 문제에서 개인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만했던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경쟁과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삶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최소한 저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눠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노동으로 흘리는 땀방울이 무의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지 홈파트너와 함께하는 뜨거운 땀방울로 변화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건축봉사 마지막 날, 포카라의 아침은 어제와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어제와 다른 점은 건축현장으로 가는 길이 즐거워졌다는 것이죠. 몸은 힘들었지만 첫째 날보다 더 힘차게 일을 마무리 하고 드디어 헌정식을 가졌습니다. 홈파트너 분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졌고 동네 주민들의 한 판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에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막춤을 췄습니다!
이렇게 건축봉사활동을 뒤로 하고 3일간 네팔에서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둘째 날 느꼈던 그 뜨거운 감동과 제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감사함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짧은 37년간 제가 살면서 느낀 그 어떤 것과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었으며 그 힘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일상에 복귀한 지금 누군가를 위해 의미 있는 나눔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은 제 인생에서 경험한 그 어느 여행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나마스떼~~
글 · 사진 : 한국기업데이터팀 안효기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