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홈파트너] 집, 소망 그리고 회복
- 작성일2014/11/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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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매거진 가을호]
대전에서 전해온 이야기
집, 소망 그리고 회복
홈파트너(입주가정)에게 해비타트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매일 이 질문에 궁금해 하며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자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대전 마을에 입주한 최은정 씨는 해비타트를 통해 온 가족이 인생의 전환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입주 3년차인 이 가정이 해비타트로 보내온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해비타트로 입주한 지 3년차, 가끔 이 곳에 이사오기 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당시 우리 가족은 친정 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았다. 임대료를 절약할 수 있고, 아버지의 외로움도 달래드릴 수 있어 좋은 점이 많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쳐왔다. 남편이 이직을 하며 수입이 줄어 경제적 상황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설상가상 사춘기를 겪던 두 아들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집안에선 자주 큰소리가 났고, 사니 못사니 하며 가정이 깨질뻔한 위기도 여러 번 찾아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전쟁을 치르고 나면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교차로 신문을 통해 해비타트 입주가정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집이 생긴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찾아올까.’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는데 입주자로 선정되는 기적을 맛보았다. 이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이직한 남편은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겨 입주가정의 필수 요인 땀의 분담(건축봉사)에도 맘껏 참여할 수 있었고, 큰 아이도 아빠를 도와 건축봉사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아들은 이 시기를 통해 본인도 해비타트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겠다며 건축 인테리어과에 진학했다. 땀의 분담에 동참하며 자연스레 봉사시간을 많이 쌓게 되어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직장생활 중이던 나도 저녁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현장을 찾았고, 매일 지어져 가는 집을 보며 ‘아, 이 곳이 우리 가정의 소망이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봉사자의 손길과 땀방울을 보면서도 그 예쁜 마음에 감탄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늘 감사하며 내 집을 바라보게 된다.
2011년 대전 헌정식
잊을 수 없는 2011년 12월 24일. 우리 가정은 드디어 해비타트에 입주하였다. 모든 것은 꿈만 같았다. 기존에 쓰던 살림을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었기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마치 여느 자취생이 이사하듯 헐렁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신혼살림을 장만하듯 하나하나 살림을 마련해나갔다. 어떻게 3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난 시간이었다. 건축의 매력에 푹 빠져 살던 남편과 큰 아들은 이제 직접 목재소에서 구입한 재료로 베란다 선반, 티테이블, 밥상 등을 만들어주는 자상한 남편, 의젓한 아들이 되어 있었다. 친척이나 남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전원주택 같은 집을 가진 게 부럽다며, 어떻게 하면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행복해진다. 더 욕심 낼 것도 없이 감사하고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2014 광양 한국번개건축
간혹 봉사의 손길을 통해 또 다른 지역에 해비타트 건물이 지어지는 걸 보노라면, 아직도 희망을 꿈꾸고 있을 옛날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나 마음 한 켠이 짠하다. 앞으로 더 많은 이웃들을 위한 집이 지어지길 바란다. 해비타트와 그리고 집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 담긴 화이팅을 보낸다.
글 최은정 홈파트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