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비타트와 함께한 이들의 후기 인터뷰, 지금 만나보세요.해목교 설립자를 만나다
- 작성일2017/09/2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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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 김용철 교수 인터뷰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목조건축을 전문적으로 교육받는 과정도 인기를 얻는 추세이다. 한국해비타트가 운영하는 목조건축학교(이하 해목교)도 어느덧 16년 차. 그간 수료생만 600여 명에 달한다.
해목교의 설립부터 교육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까지. 이 모든 과정엔 김용철 교수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1일, 충남세종지회 해목교 사무실을 찾았다.
*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이하 해목교)는 한국 목조주택의 자재, 시공, CAD 등 건축 이론을 공부하고 지붕과 벽체 마감, 단열재와 석고보드 시공 등 실습을 경험하는 교육과정이다. 총 5주간(이론 2주, 주택신축실습 3주)의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함께 숙식하며 집중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김용철 교수(사진)는 해목교 최초 설립자이자 16년 째 교육을 이끄는 지도교수다
처음 해목교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2001년 아산 건축봉사 현장에 있었다.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와 함께 집짓기를 하던 때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한미 봉사자가 오고 갔다. 그런데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미국 봉사자들은 참 잘하는데, 한국 봉사자들은 엉터리로 하고 있더라. 그런 걸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앞으로 한국해비타트가 이런 집들을 많이 지을 텐데 이러다가는 문제가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회 국장님을 찾아가 봉사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크루리더를 양성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해목교 첫 수업이 열렸다. 6평짜리 회의실에 빔프로젝터 하나 없이 책상 하나만 있었다. 모인 사람도 6명이 전부였다. 해목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목조건축 전공자인가?
건축 전공자는 아니다. 그저 목조 건축이 좋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국 LA로 출장 간 적이 있는데 언덕 위에 성냥갑같이 생긴 목조주택이 많더라. 그게 너무 신기해서 일이 끝나면 들러서 구경하고, 서점에 가서 비슷한 주택들에 대한 책을 골라 읽곤 했다. 전문용어가 다 영어로 되어있으니까 보기가 힘들었다. 전략을 바꿔 비디오를 샀다. 한 20시리즈 정도 되는 비디오를 몽땅 사서 점심시간에 보고 쉬는 시간에도 보고 나중에는 CD로 구워 차에서까지 들었다.
이후에는 직접 설계를 해 모형 집짓기를 시작했다. 가족들이 먼지 날린다며 뭐라 뭐라 하는데도 미친 사람처럼 계속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들 가르치면서 그때 공부한 것들 죄다 써먹고 있는 것 같다. 패밀리 타운을 짓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대신 그 열정을 학생들에게 쏟아붓는 중이다.
해목교 교육실엔 수료생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해목교가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초반에는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바쁘기도 하고 한국에 있을 시간이 부족해 1년에 한 번 시간 내어 교육하는 게 전부였다. 학생 수도 적어 4명만 앉혀놓고 수업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1기 제자들이 와서 계속 지지해주더라. 자기들이 옆에서 도울 테니 학교가 없어지지 않게 계속 해달라나. 그렇게 7기까지 이어졌다. 8기부터는 ‘그래 제대로 한번 해보자’ 싶어 커리큘럼도 새로 짰다. 이후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학생들이 많아졌다. 수업도 1년에 4회로 늘어났다. 현재까지 수료생이 46기수 600명에 이른다.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고 들었다
처음엔 교재도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 있는 것을 강의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제자가 책이라도 만들어주면 계속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기에 책을 만들게 됐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이론과 실습 과정을 넣은 1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만들면 되겠다 싶어 2주면 충분할 꺼라 봤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알고리즘을 짜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면서부터는 국내외 전공 서적을 살펴보았다. 국내엔 목조건축에 대한 책이 많이 없어 애를 먹었다. 책에 있는 글자 한 글자씩 다 직접 타이핑했다. 표지 사진, 포토샵 작업까지 직접 했다. 꼬박 6개월 걸렸다.
김용철 교수가 직접 제작한 교재. 16년이 지난 지금도 교열, 교정에 공을 들인다.
교재도 수정 작업이 필요할 텐데
교재를 만든 뒤 매년 오타를 고치고 달라진 문법을 보완한다. 학생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지금부터 공부하다가 오자가 나오는 대로 적어서 내라’고 한 적도 있다. 나중에 포스트잇을 걷으면 이만큼 쌓여있다. 어떤 학생은 졸업한 후에도 틀린 글자를 정리해서 우편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그걸 보고 또 수정을 한다. 지금은 거의 틀린 것이 없지만 아직도 수정은 계속된다. 교재 내용도 점점 보완되면서 한 권이었던 책이 2권이 되고, 지금은 3권 분량이 됐다. 아무튼 여러모로 애착이 많은 교재이다.
교육 커리큘럼이 궁금하다
4주간의 이론교육, 1주간의 실습으로 이루어진다. 매우 집중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정이라 소수의 인원이 함께 숙박하면서 공부한다. 이론수업은 직접 만든 교재로 한다. 목조주택의 장점, 우리나라에서의 위상 등 기본 개념과 콘크리트 구조 같은 일반 주택 건축에 대한 내용 그리고 목조주택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마지막엔 적산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이론 기간 중에는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과제를 준다. 그러면 학생들끼리 저녁에 모여 같이 공부를 한다. 이론과정이 끝나면 실습에 앞서 4일간 시간을 내 실제와 똑같은 축소 모형의 주택을 만든다. 굉장히 세밀하고 정확해야 해서 실제 집짓기보다 더 어렵다. 그 후엔 1,2주에 걸쳐 6평 규모의 실제 목조 주택을 짓는다. 완성된 집은 학생들 숙소로 쓰거나 봉사자들 숙소로 쓴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기도 한다.
취재 당일, 해목교 46기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수업시간엔 어떤 것을 강조하는가?
나는 반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목조건축이라는 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인데다 규격도 인치, 피트 등 평소 안 쓰던 단위이다 보니 자꾸 시키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또 목조건축 책도 미국 도서가 많고 유학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건축 용어를 영어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자꾸 들어야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 초반엔 교재와 함께 옛날에 직접 들었던 영어로 된 목조건축 강의 CD를 주면서 100번씩 들으라고 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형을 만드는 날에는 밴찌를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이 잘못 작업한 부분을 뜯어낸다. 아쉽긴 하겠지만 배움이 더 크다.
또 나는 수업시간엔 절대 졸지 못하게 한다. 너무 졸면 혼내거나 뒤에 서서 공부하라고 한다. 가뜩이나 생소한 목조건축인데 한번 놓치면 금방 넘어가버리니까. 재미있는 건 내가 종종 나이를 잊는다는 거다.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쉬는 시간을 훌쩍 지나 2시간 연달아 강의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졸업생들이 선물로 큰 디지털시계를 사 준 적이 있다(웃음). 가끔 일찍 끝내주면 다 큰 학생들인데도 정말 좋아한다. 거기엔 나이가 없나 보다(웃음).
직접 제작한 목조건축 모형과 공구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에 활용한다.
학생들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가
학생의 만족도다. 실습에 쓰는 자재비용 모두 학생들이 부담하는 것이라 다른 목조건축학교에 비해 수업료가 싸지는 않다. 그만큼 등록금이 아깝지 않게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또 학생들이 실습하면서 지은 주택도 좋은 곳에 쓰려고 한다. 그래야 집을 지은 학생들도 보람 있을 테니까.
또 하나는 전문 빌더를 양성하는 것이다. 해목교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그중에는 자기 집을 지으려고 온 사람도 있지만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이나 전문적으로 봉사하려는 사람도 많다. 해비타트가 집을 지어준다면, 해목교는 직업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집 한 채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 빌더가 되는 것 말이다.
빌더는 나무를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땅을 얼마만큼 파야 하는지, 벽체는 얼마나 두껍게 해야 하는지, 그 밖에도 구조, 단열, 차음 등 건축적인 부분, 그리고 자재를 사고 적산하는 것까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 모두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학생들이 지은 집은 사람들에게 기증한다. 교회 기도실로 주기도 하고,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푸드뱅크로 쓰기도 하고, 노인들을 모시는 숙소나 장애인 아이들을 위한 매점,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집으로 주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목사님의 사택을 지어드린 거였다.
숙소가 없어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는 가족이었는데, 시설이 좋지 않다 보니 추운 겨울에 딸을 잃은 아픔도 갖고 있었다. 2주 동안 학생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실습을 하면서 집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기수 졸업식을 그 교회에서 했다. 목사님도 학생들도 전부 눈물바다가 되어버린 기억이 난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
내 이익이나 명예, 사람을 거느리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목조건축은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그걸 해본 것만으로 만족한다. 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큰 보람이다. 비록 내 집은 짓지 못했지만 학생들과 함께 수많은 집을 지었다. 학생들도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종종 졸업생들이 모여서 봉사하러 오는데, 그것도 정말 뿌듯하다.
해비타트 그리고 해목교가 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
해비타트는 봉사자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기술과 역량이 있는 봉사 리더를 키우는 것이다. 해비타트에서는 건축을 완전히 잘 아는 전문 빌더와 스태프를 양성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해목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해목교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게 중요하다.
또 그런 좋은 기술자들로 더 멋진 집을 지었으면 한다. 단순히 경제적이고 튼튼한 집을 넘어서 누구나 살고 싶은 집, 모두가 부러워하는 집을 말이다. 해비타트 집에 입주하는 가정들이 더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집이 지어지길 바란다.
앞으로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처음엔 복도에 있는 액자들이 졸업생 사진으로 다 찰 때까지만 하자 했다. 그런데 이제 4개밖에 안 남았다. 물론 70살 넘어 9시부터 6시까지 하루에 8시간을 강의하는 게 좀 힘들다. 하지만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제자들이 찾아와 힘을 보탠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하지만 이제는 해목교를 이어갈 후임자를 찾아서 바통터치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해목교가 잘 이어져나가게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글 해비타트 기자단 조윤민
사진 해비타트 기자단 박현수, 한국해비타트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