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비타트와 함께한 이들의 후기 인터뷰, 지금 만나보세요.“산사태가 나면 우리 집은 빵꾸날 거예요”
- 작성일2016/11/10 14:40
- 조회 5,372
“산사태가 나면 우리 집은 빵꾸날 거예요”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수호가 마당에 들어서며 말했습니다. 산에 파묻히다시피 지어진 수호네 집은 오래된 흙집이었습니다. 낡은 갈탄 보일러가 고장 난 로봇처럼 마당 한편에 놓여있었습니다. 슬레이트로 덧댄 얇은 지붕은 초겨울 바람에 삐-끄덕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여기에서 아빠랑 할머니랑 누나랑 여동생이랑 5명이 살아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지 않은 단칸방에 어질러진 집기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벽에는 언제 죽었는지 모를 곤충들이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살짝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퀴퀴한 부엌 곰팡내가 흘러나왔습니다. 베트남 이민 여성이었던 수호의 엄마는 6년 전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수수께끼 하면서 새 집으로 가요”
언덕을 먼저 뛰어 내려가는 수호의 발걸음이 풍선처럼 가볍습니다. 가는 동안 본격적인 수수께끼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결과는 수호의 승리. “머리를 반으로 쪼개도 살아남는 것은 콩나물!”이라며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수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갑니다.
한국해비타트가 수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4월이었습니다. 당시 합천군청은 비위생적인 환경때문에 아이들이 자주 아파한다며 수호네 사연을 소개해줬습니다. 우리는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수호네 새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새 집은 513㎡의 대지에 세운 건축면적 70.98㎡(전용면적 21.4평)의 경골목구조 주택으로 지어졌습니다. 특별히 취학연령대인 아이들을 고려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안방과 거실 사이에는 커다란 미닫이문을 두어 필요에 따라서 온 식구가 모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수호네 새 집은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도착했을 때 집 안에서 까르르 공주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수호의 누나와 여동생인 10살 수민이와 6살 수진이었습니다. 각자 방이 생긴 수민이와 수진이는 책상에 앉아 선물 받은 책가방과 학용품들을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민이와 수진이가 거실로 나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가장 먼저 커다란 거실 창문 밖으로 넓게 펼쳐진 머루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앞산에는 색종이 같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전등은 처음 봤어요”
수민이가 자기 방 전등 스위치를 만지작거리며 말합니다. 수민이의 작은 손가락이 위아래로 까딱거릴 때마다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이 사랑스레 깜빡거렸습니다. 핑크빛 책상과 2층 침대를 갖게 된 수민이는 벌써 책상을 콘센트 있는 쪽으로 옮기고 침대를 어디에 둬야 한다며 방 꾸미기에 부산스러운 모습입니다.
자기 방이 없는 성우가 혹시라도 섭섭하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니 “우리 방이 제일 넓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아빠와 함께 방을 쓰는 건 어떠냐”는 물음에는 “아빠랑 매일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막내 수진이에게 “새로 생긴 이 집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전 집은 못생겼는데 새 집은 예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은지 발코니로 나가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양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자꾸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참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수진이가 어느새 한걸음 앞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수진이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눈이 어찌나 맑은지 그 안에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행복하라 아이처럼’이라는 책을 쓴 사진작가 알렉스 김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는 사진 찍는 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이 사진을 본다면 당신도 그 눈 속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그 아이의 눈 속에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담은 이 아이들의 맑은 눈이 우리가 선물한 새 집에서 더욱 밝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글ㆍ사진 홍보팀 김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