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비타트와 함께한 이들의 후기 인터뷰, 지금 만나보세요.[칼럼] 주택은 시대의 거울
- 작성일2016/01/13 10:14
- 조회 3,031
Going Together _ 집 이야기
주택은 시대의 거울
_ 글 서윤영(건축 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급격한 문화 변동의 시기였던 개화기에 문화 주택이 유행했다. 그런데 각 방의 명칭이 서재, 응접실, 침실, 주부실, 아동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
문화 주택의 시작은 가장 중심
문화 주택은 사실 철저히 가장의 시각에서 구성된 주택이었다. 가장인 자신이 낮에 머무르는 서재, 밤에 잠을 자는 침실,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 그리고 아내의 방인 주부실과 자녀들을 위한 아동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자녀는 한 집에 대개 서너 명은 되었는데 아동실은 하나뿐 이어서 지금으로써는 좀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그나마 이것이 그 이전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경우였다. 아동이라는 개념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세기 무렵이었고, 그 이전까지 아동이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방을 별도로 두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
거실, 가족 단란을 위한 공간
하지만 해방 후 급격한 경제성장의 시기이던 1960년대부터 주택의 모습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의 구호 아래 부부와 2명의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면서 주택 또한 4인 가족을 모델로 계획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기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택 유형이 급속히 보급되던 때이기도 했다. 부부와 2명의 자녀 모두에게 각자의 방을 주기 위해 3개의 침실이 있는 아파트가 국민주택이라 불리면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또한,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가 점차 핵가족화되며 그전까지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 ‘가족 단란 행위’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러한 가족 단란의 장소로서 거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과거 가장이 손님을 맞이하던 응접실이 1960~70년대에 이르러 가족 단란을 위한 거실로 변화하고, 한 집에 하나이던 아동실은 이제 자녀마다 개인적 공간을 주는 것으로 변화했다. 이는 자녀 수가 감소하면서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보고 각자에게 독방을 주었기 때문이다.
안방, 가장에게서 자녀에게로
그로부터 다시 40~50년이 지난 지금, 주택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자녀의 수가 그사이 더욱 줄어 외동아이인 경우도 많은데, 침실 3개 중 2개를 아이가 쓰는 집이 있는가 하면, 아예 아이에게 안방을 내어주는 집도 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작은 방안에 침대와 옷장, 책상이 함께 있다 보니 옷과 책이 뒤엉켜 정리가 안 된다. 그래서 공부에 집중하라고 잠을 자는 방과 공부하는 방을 따로 분리해주었다. 요즘 대부분의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나 돌아오니 정작 안방은 낮에 텅텅 빈다. 그러니 그 방은 차라리 아이에게 주고 부부는 밤에 잠만 자면 되니 작은 방으로 옮겼다.
이 모든 이유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자녀 수가 줄어 외동아이가 되고 보니 그 아이에게 더욱 확실히 투자하기 위해 교육비가 많이 들고 그 교육비를 벌기 위해 부부는 맞벌이를 해야 한다. 부부가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가장 좋은 안방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아이에게 할애하게 된다.
또한,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는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자니 공부를 위한 별도의 방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즘 주택에는 새로운 사용 방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부부와 외둥이 자녀로 구성된 3인 가족이 3개의 침실이 있는 집에 살면서 어른 2명이 작은방 하나를 함께 쓰고 아이가 방 2개를 쓰는 집이 생긴 것이다.
주택에서 시대상을 보다
100여 년 전 문화 주택을 보면, 가장은 침실, 서재, 응접실을 쓰고 아내는 주부실을, 서너 명은 되었을 자녀들은 아동실이라는 방 하나를 공동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른 2명이 작은 방 하나를 함께 쓰고 아이가 방 2개를 공부방과 침실로 분리해 쓰고 있다. 이처럼 주택은 그 시대를 가장 민감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