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비타트와 함께한 이들의 후기 인터뷰, 지금 만나보세요.청년인턴의 눈 - 베트남 난민과 작은 배
- 작성일2015/04/01 10:03
- 조회 5,841
청년인턴의 눈 - 베트남 난민과 작은 배
안녕하세요. 저는 코이카 ODA청년인턴으로 한국 해비타트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열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해비타트에 꿈을 갖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선교 여행으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 인근 깐달 주(Kandal province)를 방문, 베트남 난민들이 살고 있는 품둥(Phum Duong) 마을에 머물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베트남 난민들은 강 위에 배를 띄운 채,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가난한 마을을 보면 알 수 있듯 슬픈 역사를 지닌 마을이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던 그곳의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은 제 가슴속 깊게 새겨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후, 저는 학교를 휴학하고 1년의 기간 동안 품둥 마을을 품기로 결심했습니다.
품둥 마을 아이들과 함께한 국제학교
품둥 국제학교/장로교회 아이들과 함께 한 주일학교
다시 찾은 캄보디아에서 저는 베트남 난민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품둥 국제학교/장로교회(Phum Duong International School/Phum Duong Presbyterian Church)에서 현지교사 직을 맡았습니다. 주중에는 근태관리, 재정관리, 그리고 수업 후 진행되는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10~20명의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캄보디아에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정규 수업이 끝난 뒤면 방과후 수업으로 한국어 교실을 개설하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해맑은 품둥 마을의 아이들
보트피플로 살아가고 있는 캄보디아의 베트남 난민들
강 위에 배를 띄운 채 생활하는 품둥 마을의 주거 형태
사실 캄보디아에는 약 100만명에 이르는 수많은 베트남 난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땅한 집 없이 강 위의 수상가옥 혹은 작은 배에 의지한 채 위태로운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위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불려집니다. 이들이 캄보디아까지 와서 ‘난민’으로 살아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주업인 어업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최대 강인 메콩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베트남 어민들이 메콩강을 통하여 캄보디아로 유입된 것이 이들을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1960년대에 발발한 베트남 전쟁 때문입니다. 베트남인들은 전쟁으로 인해 자신들의 거처를 떠나야만 했고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캄보디아로 피난을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지만 ‘캄보디아인’이 아니기에 ‘보트피플(Boat People)’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베트남 난민들이 지상에서 집을 짓고 살아갈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는데 인색하고 행여 비용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어업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난민들에게 그 금액은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다짐했어요. 이들에게 ‘꿈’과 ‘집’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품둥 마을의 열악한 주거환경
품둥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집’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집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수입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품둥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꿈은 단지 사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가난이라는 굴레 안에서 기존의 삶의 방식을 답습해가며 꿈을 잃고 살아가는 그곳의 아이들은 제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나의 삶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주거관련 NGO 해비타트에서 ODA청년인턴으로 함께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쩌면 작은 배 위에 살고 있는 난민들을 보면서, 집을 짓는 해비타트에 관심이 갔던 것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비록 지금은 해비타트라는 단체를 통해 파견되어 나가는 인턴이지만 먼 훗날엔, 꿈의 초석이 되어준 베트남 난민들을 위해 든든한 집을 만들어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실현할 수열의 꿈
ODA청년인턴 백수열 인턴
잠시 저의 파견 활동을 소개합니다. 저는 ODA청년인턴으로서 4월 중에 방글라데시로 출국할 예정으로, 방글라데시 해비타트 현지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한국 해비타트와의 업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입니다. 아직 방글라데시는 궁금한 것으로 가득한 나라이지만 작게나마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지 사람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생활할 때 마을 아이들은 저에게 ‘뻔르’라는 현지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우리말로 ‘빛’을 뜻합니다. 모든 곳이 열악한 난민촌에서 자신들과 함께 살았던 외국인에게 지어준 값진 이름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새로울 방글라데시에서도 하루 빨리 그들과 친구가 되어 방글라데시를 돕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방글라데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글라데시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가 가장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베일에 쌓여있는 나라와 사람들이지만 곧 만나게 될 방글라데시에서의 제2의 삶을 기대해 봅니다.
글 해외협력실 백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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