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타트현장
국내외 해비타트에서 보내온 현장이야기를 소개합니다.가장 따뜻한 집밥이 있는 특별한 헌정식
- 작성일2016/09/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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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머니를 여읜 삼형제가 사는 곳은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60년 된 허름한 흙집입니다. 한국해비타트가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삼형제는 구멍 뚫린 천장 밑에서 불안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며칠째 내린 폭우로 처마 끝자락이 무너져 내렸고, 갈라진 흙벽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때문에 10살 막내는 연신 기침을 해댔습니다. 때마침 ‘희망손글씨 캠페인’의 일환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동가정을 찾던 한국해비타트는 삼형제의 사연을 듣고 지체 없이 공사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9월 2일, 약 한 달간의 공사가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는 헌정식이 열렸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삼형제네 빨간 지붕 밑으로 반가운 손님들이 모였습니다. 가장 먼저 축하해주기 위해 달려온 손님은 막내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의 원장님이었습니다.
"셋 다 멋있어졌다~!"는 원장님의 말에 둘째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둘째의 머리카락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묻어있었습니다. 아침까지 계속된 마무리 공사를 돕다가 생긴 흔적이었습니다. "염색을 한 것 같다"는 놀림에 첫째가 "그래서 일부로 좀 묻히기도 했다"고 능청스레 편을 들었습니다. 첫째의 팔뚝에도 훈장 같은 페인트가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직접 페인트칠을 하며 집고치기를 도운 조재민(좌), 조정민(우) 형제
헌정식은 삼형제의 원치 않았던 이산가족 생활이 끝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삼형제는 친척 집이나 교회 등에 제각각 흩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한 달 만에 만난 삼형제 주위에는 웃음꽃이 만개했습니다. 옆집에 잠시 맡겨졌던 강아지 토실이도 오랜만에 본 삼형제가 반가운지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서른 명의 하객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 삼형제를 축복하면서 헌정식이 막을 내렸습니다.
쿡앤플레이트 김민철 쉐프와 삼형제 중 막내 조성민 군
바로 그 시각 삼형제네 작은 주방에서는 쿡앤플레이트 김민철 쉐프가 흐르는 땀을 휴지로 닦아가며 바쁘게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덥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는 "더운 것보다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두고 와서 아쉽다"며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사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쿡앤플레이트가 이번 헌정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삼형제의 사연을 듣게 된 쿡앤플레이트 이희연 대표가 헌정식에 참석해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덕분입니다. 이날 이 대표와 김 쉐프는 경기도에서 천안까지, 식재료와 상차림을 위한 그릇을 준비하고, 삼형제 집에 선물로 전달할 냄비와 프라이팬, 도마 등을 양손 가득 들고 직접 헌정식을 찾았습니다.
교자상 위에 정갈한 반찬들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들부들한 차돌박이가 몸을 담근 된장찌개부터 푸른 파가 뿌려진 떡갈비, 매콤한 오삼불고기와 간고등어조림, 고슬고슬한 쌀밥을 끝으로 마침내 13첩 반상이 완성됐습니다. 오늘 요리의 제목을 지어달라는 부탁에 김 쉐프는 "집밥"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이날 상에 올라간 반찬 중 일부는 김 쉐프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진짜 '엄마의 집밥'이었습니다. 김 쉐프로부터 삼형제의 사연을 들은 어머니는 "네가 만든 게 무슨 집밥이냐"면서 "내가 진짜 집밥을 보낼 테니 삼형제에게 차려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날 13첩 반상의 주인공은 삼형제와 공사를 도맡아 한 충남세종지회 스텝들이었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자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떡갈비와 오삼불고기가 상 위에서 빠르게 사라져갔습니다. 반면 어른들의 젓가락은 고구마순김치와 가지나물, 우거지들깨볶음 사이에서 바빴습니다.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약 한 달여간 공사를 도맡아 한 건축팀장은 "이렇게 짜지 않고 맛있는 간고등어 조림은 처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요리의 평을 부탁받은 첫째는 "18년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밥상"이었다는 말로 모든 이들의 감탄을 끌어냈습니다. 흐뭇한 표정의 김 쉐프는 "헌정식을 축하해주러 왔다가 도리어 많은 것을 받아 가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마 이 날의 ‘집밥’은 삼형제 가족뿐 아니라 함께 한 모두에게 ‘가장 따뜻한 한 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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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식사를 끝낸 막내가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헌정식에 사용했던 색동리본이 들려있었습니다. 뒤이어 나온 둘째가 은빛 억새를 꺾어 막내에게 장난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덕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마당의 옥수숫대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줄지어 선 고추는 가을볕에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치켜든 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막내가 둘째와 장난을 치며 언덕을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가을이었습니다.